언론보도 332
2013-05-20
조회 9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587969.html

고 박영숙 선생님을 추모하며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온 세상을

보듬을 만큼 넓은 품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안아주시던 선생님은 실천하는


지성의 대표이자 큰언니셨습니다




“생을 마치는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
박영숙 선생님은 이 꿈을 좇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과 이 땅의 여성들이 요구하는 역할에 평생 열정을 바치시고, 오늘 새벽 영면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만주와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월남하시어 오늘까지 정의와 평등, 인권과
환경, 그리고 여성과 생명의 편에서 의로운 리더로 사셨습니다.

1955년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에서 처음 사회 참여를 시작한
선생님은 한반도 역사적 격변기의 반세기 동안 환경단체와 여성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를 설립하셨고, 세상을 떠나시던 날에도
한국여성재단 창립이사장이자 고문,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미래포럼 이사장, 살림이재단 이사장,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살림정치
여성행동 대표로 일하시던 현역 활동가이셨습니다.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온 세상을 보듬을 만큼 넓은 품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안아주시고, 변화에 앞장서는 후배
리더들을 위해서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내가 뭘 하면 좋을까’라시며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평생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시며 자연과 환경을 소중히 여기신
선생님은 실천하는 지성의 대표이자 큰언니셨습니다. 늘 미소와 기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부드러운 권위와 카리스마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해마다 연말이면 며칠 동안 밤까지 새워가며 손수 장만하신 음식으로 후배들에게 파티를 열어 주시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이미 암이 진행되어 오른팔을 쓰지 못하시던 작년 봄에도 손수 음식을 준비하시어 막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여성의원들에게 좋은 사회와 맑은 정치의 디딤돌을 부탁하셨습니다.

석유자원이 전무한 우리가 전기와 휘발유를 너무 낭비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던 박 선생님은 난방과 전기를 아끼셔서 집 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지내실 정도로 검약하신 분이셨습니다. 또 2010년 북한에 땔감이 없어 어린애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을
새워가며 목토시 수백개를 뜨셨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북한에 보내지 못하게 되자 몹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의 큰 어른 한분이 떠나셨습니다. 남녀가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만드는 일 등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많은 과제들은 오롯이 여기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이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땅의 딸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살아계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2013-05-20
조회 5
http://www.segye.com/Articles/News/People/Article.asp?aid=20130517002174&ctg1=02&ctg2=&subctg1=02&subctg2=&cid=0101120200000
박영숙 前 안철수재단 이사장 별세
한국 여성운동계 원로인 박영숙 전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난 박 전 이사장은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YWCA 연합회 총무를 시작으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평생을 여성운동에 전력한 ‘여성운동계 대모’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대책 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해 13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평민당 총재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 위원장을 역임했다. 평소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쳤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엔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 전도사로도 활약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고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도 펼쳤다. 2012년 초 안철수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암 투병 탓에 지난 3월7일 사임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 여사는 초기 한국 여성운동을 주도하며 고인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기에 평상시에도 병환을 걱정하며 자주 연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늘 여성들의 맨 앞에 서 계셨던 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같은 당 한명숙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선생님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하셨다.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시던 그 마음은 따듯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닮고 싶다. 편히 잠드소서”라는 글을 올렸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도 “고인은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여성계 지도자였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02)2227-7550)

이우승 기자

2013-05-20
조회 11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587982.html‘여성·환경운동의 대모’ 박영숙(사진)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17일 새벽 5시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19살에 월남한 고인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부터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활동을
시작한 이래 평생을 여성운동가로 살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 부회장을 지냈고, 1999년 첫 시민사회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지내는 등 한국 여성운동계를 이끌었다.
박 전 이사장은 1987년 평화민주당 부총재로 정치에 입문해 정치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1988년 평화민주당 전국구 1번으로
13대 국회의원이 됐으며, 여성도 친권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등에 앞장섰다.
고인은 환경운동에도 헌신했다.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녹색연합 공동대표, 사단법인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정계를 떠난 뒤에도 2009년 여성·환경·시민운동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살림이’를 설립하고,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공동대표로 일하는 등 여성·환경운동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지난해 3월부터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을 맡은 게 그의
마지막 공식 활동이었다.


유족으로는 민중신학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고 안병무 한신대 교수와의 사이에 둔 아들 안재권(45·번역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이다. 고인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02)2227-7550.
김지훈 이정국 기자 watchdog@hani.co.kr

2013-05-20
조회 14
http://www.fnnews.com/view?ra=Sent0801m_View&corp=fnnews&arcid=13051721114130&cDateYear=2013&cDateMonth=05&cDateDay=17

17일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로, 정치가로 활동한 그의 삶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성 조문객들이 유달리 많았다.

오전 11시부터 조문객들을 맞이한 빈소는 이날 밤 늦게까지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운동계의 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 뒤 삼삼오오 모여앉아 그를 추억했다.

여성운동에 투신하다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낸 한명숙 의원은 “선생님과는 여성운동을 같이 하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선생님은 항상 후배들을 북돋아주셨고 일년에 두 차례씩 불러다 밥을 지어주셨다. 동치미가 어쩜 그렇게 맛있었는 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박 전 이사장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과 나는 늦은 결혼에 아들 하나씩을 뒀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만나면 아들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면서 “선생님의 남편이신 안병무 박사님(1996년 작고)은 굉장히 재치있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의 가족들과 함께 상주 역할을 맡은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은 “박 선생님은 굉장히 인간적으로 따뜻했던 분”이라며 “후배들이 굉장히 존경했기 때문에 그 분이 부르시면 한 번에 30~40명씩 몰려가곤 했다”고 전했다.

80년대부터 박 전 이사장과 인연을 맺어온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박 선생님은 이례적으로 여성 운동가이면서도 환경에 관심이 많아 나와 여성환경연대를 만들기도 했다”며 “여성운동이나 환경운동, 정치까지 선생님은 내 인생의 멘토였다”고 했다.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의 이사로 이사장직을 맡았던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윤정숙 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얼마 전 댁으로 찾아뵌 적이 있었는 데 그때 이사장님은 ‘나는 일을 할 때면 꼭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이사장님은 아프실 때도 자료를 보시면서 공부를 하실 정도로 모든 일에 정말 열정을 다하셨다”고 전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7시 30분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뒤이어 박원순 서울시장도 빈소에서 추모예배를 함께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박 시장은 조문 직후 “고인은 여성 운동과 우리 사회 민주화의 대모이시고 많은 사람들이 늘 의지하고 기대던 분인데 잃게 돼서 너무 가슴 아프다”며 “고인의 꿈꾸신 여러 꿈들을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와 이미경·원혜영·이목희·김현미·이인영·유승희·이학영·노웅래 민주당 의원,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장이정수·남미정·정규리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대표),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보은 전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남상민 UNESCAP(UN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환경담당관,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대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미영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인숙·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이철순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이사장, 오혜란 두런두런 상임이사 등이 조문했다.

암으로 투병하다 이날 새벽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난 박 전 이사장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여성 운동과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1999년에는 우리나라 시민사회 최초의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었다.

호주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가족법 개정 추진에 앞장섰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탁아법 제정 등을 이뤄냈다. 환경부의 위상을 높이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87년에는 평민당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말년에는 미래포럼,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설립한 ‘안철수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꿈을 멈추지 않았던 고인은 지난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9개월 전부터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고인의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이고,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


(서울=뉴스1) 고유선 김유대 기자



2013-05-20
조회 9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305/h2013051720343591560.htm박영숙씨 약자 위한 한평생 접고 별세
환경운동·기부확산·정치에도 큰 족적



'여성운동계의 대모' 박영숙(사진)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이 1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1932년 평남 평양에서 태어나 19세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한 뒤 작은아버지가 있는 전남 광주에 정착했다.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활동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직후에는 YWCA활동 중 만난 여성계몽운동가 박에스더(1902~2001) 선생의 추천으로 YWCA에서 여성, 시민, 환경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YWCA연합회 총무,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여성운동의 중심을 지켰다.

67년에는 고인이 '내 평생의 스승'이라던 민중신학자 안병무(1922~1996) 교수와 결혼했다. 76년 '3·1 구국선언'사건으로 남편이 구속되자 거리로 나와 구속자 가족 시위를 벌이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고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 덕분에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면서 정치활동도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86년 부천경찰서 여대생 성고문 사건이 터지자 성고문사건대책 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으며 여성·인권문제에 한 발 더 나아가 민주투사로서도 활약했다.

87년에는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 13대 국회의원(전국구), 평민당 총재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거치며 정치가로서도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그는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을 비롯해 여성 환경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99년에는 국내 시민사회 최초의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 확산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환경문제에도 큰 관심을 쏟아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활약했고,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던 고인은 2009년 여성과 환경,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살림이를 설립했고, 아시아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해 사회공헌에도 애썼다. 또 작년에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2004), 국민훈장 모란장(1998),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2010), 올해의 환경인상(1990), 올해의 여성상(1992) 등을 수상했다.

각계의 애도가 쇄도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여성운동가이자 여성인권과 복지의 기틀을 잡은 고인은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여성계 지도자였다'며 애도했고,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고인의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유가족과 여성운동가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 중이던 고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도 '참으로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대대표가 전했다. 전날 고인을 병문안 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거목을 잃었다. 그 슬픔이 한이 없다'며 명복을 빌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이미경 원혜영 김현미 남윤인순 등 민주당 의원과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 등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경기 마석 모란공원. 02)2227-7550


2013-05-20
조회 1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66313여성운동가로 활동 시작... 평민당 부총재와 13대 국회의원 지내


▲  고 박영숙 안철수재단 명예이사장. 사진은 박 이사장이 지난해 8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열린 재단 이사회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공세를 받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여성운동가 박영숙(81) 안철수재단(동그라미재단) 명예이사장(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5시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난 박 이사장은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해, 1987년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대통령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미래포럼 이사장,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 안철수재단 이사장 등을 맡았다.


명숙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SNS를 통해 '여성운동의 대선배인 박영숙 선생께서 오늘 아침 운명하셨습니다,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들어가신 선생님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하셨습니다'라며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시던 그 마음은 따듯한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닮고 싶습니다, 편히 잠드소서'라고 추모 글을 남겼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도 '여성과 인권을 위해 바친 한평생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했다.

박 이사장의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0일이다.


2013-05-20
조회 6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587893.html
17일 오후 박영숙 전 안철수재단 이사장이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조문객들이 방문해
문상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3.5.17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 박영숙 전 안철수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5시께 경기 일산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향년 81살.
고인은 기독교여자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한국 여성운동계의
중심이었다. 박 전 이사장은 평양 출신으로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그 뒤 YWCA연합회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1986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여성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 부회장도 맡았다. 1999∼2009년에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뒤로는 고문을 맡아왔다.
고인은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는 등 환경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지난 13대 국회 때는 평화민주당 전국구 1번으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후 평민당 총재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여성 정치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정계를 떠난 뒤에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또한,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의 창립을 주도하고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안철수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여성·환경·정치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보인 ‘대모’의 영면 소식에 사회 각계 인사들은 앞다투어 추모의 뜻을 전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박영숙 선생님께서 오늘 새벽 운명하셨습니다. 여성과 인권을 위해 바친 한평생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후배 여성 운동가인 민주당 한명숙 의원도 트위터에 “여성운동의 대선배인 박영숙
선생께서 오늘 아침 운명하셨다.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들어가신 선생님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하셨다.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시던 그 마음은 따듯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닮고 싶다. 편히 잠드소서”라는 글을 올렸다.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평생을 여성 인권 운동에 주력하신 분이다. 하지만 운동가 이전에 항상 후배 활동가들을 위해 손수
밥을 지어 먹이던 큰언니 같은 분이기도 했다. 큰 어른을 잃었다. 여성계 모두가 침통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부
여성정책의 수장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도 “여성의 권익보호와 양성평등을 위해 평생 헌신해오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의
뜻을 밝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이다. 고인의 장지는 경기 마석 모란공원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2013-05-20
조회 8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518/55230711/1박영숙 前평민당 총재 권한대행

17일 별세한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DB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代母)’ 격인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 여성운동에 투신해 기독교여자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이때 이화여대 선배이자 YWCA 등에서 활동하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각별한 사이가 됐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때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엔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 전 대통령의 TV 찬조연설을 했고, 이듬해인 1988년 13대 총선 때 여성
최초로 비례대표 1번(평화민주당)을 받아 국회에 진출했다. 이어 평민당 부총재와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국장(國葬)
때는 추도사를 낭독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후보 캠프 고문을 지냈고, 지난해
2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대학교수에서 대선 예비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에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암이 발생해 올 3월 이사장 직을 사임한 뒤 항암치료를 받아왔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행의 별세
소식을 듣고 “거목을 잃었다. 그 슬픔이 한이 없다”고 애도했다고 안 의원 측이 전했다. 이희호 여사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 여사는 14일 투병 중인 박 전 대행을 병문안하고 쾌유를 빌었다고
한다.

1999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부터는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매년 ‘100인 기부 릴레이’를
주도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했으며,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일찍이 환경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비롯해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올해의 환경인상, 올해의 여성상 등을 수상했다. 1996년 별세한 민중신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안병무 전 한국신학대 교수가 남편이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 발인은 20일 오전 7시 반이다.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2013-05-20
조회 24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615/11548615.html?ctg=1200&cloc=joongang|home|newslist1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을 지낸 박영숙(1932~2013) 전 안철수 재단 이사장이 17일 소천했다. 81세

한국여성재단에 따르면 박 전 이사장은 생의 후반부까지 “죽는 날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며 여성환경연대·한국여성재단·동그라미재단(전 안철수재단)에서 혼신을 다해 활동했다.11548615.html?ctg=1200&cloc=joongang%7Chome%7Cnewslist10

한국여성재단은 “사랑과 보살핌, 정의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 선생께서는 어떤 일이든 ‘첫 사랑하듯이 일에 빠져들게 됐다’ 하셨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 전 이사장의 추모식과 장례 절차.

◇영안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특 1호실)
◇입관예배 18일(토) 14시
◇추모식 18일(토) 16시 여성추모식
19일(일) 19시 시민사회추모식
◇발인 20일(월) 07시 30분 발인 및 영결예배
12시 30분 마석 모란공원 하관식
◇장지 마석모란공원
◇연락처 02-2227-7550

온라인 중앙일보


2013-05-20
조회 26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65/11546765.html?ctg=1200&cloc=joongang|home|newslist1
박영숙 안철수재단 이사장이 17일 새벽 별세했다. 고(故) 박
이사장(오른쪽)이
지난해 2월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안철수재단
설립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사진=뉴스1(news1.kr)


'여성운동의 대모' 박영숙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명예 이사장이 17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1세.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박영숙 선생님께서 오늘 새벽 운명하셨습니다'라며 '여성과 인권을 위해 바친 한평생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박영숙 이사장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 1988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대통령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미래포럼 이사장,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 안철수재단 이사장 등을 맡았다.

빈소는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이며 발인은 20일이다.

[이재윤 기자 트위터 계정 @mton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