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332
2013-05-22
조회 10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99638평생동안 인권과 여권 신장 위해 헌신

평생동안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에 앞장 서온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17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9개월 전부터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투병해왔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17일 아침 트위터를 통해 '박영숙선생님께서 오늘 새벽 운명하셨습니다'라고 속보로 전하며 '여성과 인권을 위해 바친 한평생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고 안병무 선생의 부인으로 평생을 인권과 여성을 위해 살아왔으며 지난해에는 안철수재단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평양 출신으로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YWCA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평생을 여성운동에 힘쓰며 큰 족적을 남겼으며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대책 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쳤으며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3대 국회 때 평민당 전국구 1번으로 정계에 입문해 평민당 총재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세브란스 병원이며 발인은 오는 20일 한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이 어려울 때마다 한결같이 품어주었던 박 전 총재권한대행의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더불어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대선배를 잃은 여성운동가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ㄷ 구두논평을 통해 “여성운동가이자 여성인권과 복지의 기틀을 잡은 고인은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여성계 지도자였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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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154078【서울=뉴시스】배민욱 박대로 기자 =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박영숙 전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난 박 전 이사장은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YWCA연합회 총무를 시작으로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을 지냈다.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해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사랑의친구들 총재, 한국여성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이 외에 김대중정부 산하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재단 고문,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살림이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박 전 이사장은 2012년 초 설립된 안철수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암 투병 탓에 지난 3월7일 사임, 치료를 받아왔다.

박 전 이사장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특 1호실)에 마련됐다. 입관예배는 18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추모식은 18일 오후 4시(여성추모식), 19일 오후 7시(시민사회추모식)에 각각 열린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 연락처는 02-2227-7550.


여성운동 후배인 민주당 한명숙 의원은 박 전 이사장 별세소식을 접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운동의 대선배인 박영숙 선생께서
오늘 아침 운명하셨다.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들어가신 선생님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하셨다.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시던 그 마음은 따듯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닮고 싶다. 편히 잠드소서'란 글을 올렸다.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도 논평에서 '한 평생 우리 여성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오신 그분을 뜻을 기억하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mkbae@newsis.com

daero@newsis.com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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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news.co.kr/news/57949#.UZw710r3E7I“‘왕언니’가 소망한 정의와 평화 위해 후배들이 힘 모을 것”

▲ 한명숙 전 총리와 김형 한국YWCA연합회 부회장,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오른쪽부터)가 18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영숙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 여성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여성운동의 대모’ 박영숙 살림이 이사장을 기리는 여성추모식이 18일 오후 4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여성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모식에 앞서 오후 2시 입관예배가 치러졌다. 분향소에는 이틀째 여성계와 정계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여성환경연대,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두런두런 등 고인이 관여했던 여성단체 후배들이 교대를 하며 빈소를 지켰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선배들이 입관식 때문에 자리를 비워 후배들이 잠시 지키고 있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 대표의 말처럼 영결식장에는 원로부터 중견, 젊은 활동가들까지 여성운동에 투신한 많은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 이사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져 장례위원회가 별도로 꾸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미리 유서를 써뒀다고 한다. 박옥희 전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대표는 “유서에서 고인은 ‘화환을 받지 말고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라. 주검은 화장해 달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20억원가량 되는 전 재산은 향린교회에 기부했다. 향린교회는 민주화운동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곳으로 고인의 남편이자 민중신학자였던 고 안병무 전 한신대 교수가 세운 신앙공동체 향린원의 후신이다.

추모식이 열린 영결식장 벽면에는 여성계 후배들이 그를 기리며 쓴 편지와 엽서들이 붙어 있었다.

여성추모식은 박 이사장의 생전 활동을 담은 추모영상 상영, 헌화와 추모사 낭독,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의 추모 노래, 진혼무, 공동 퍼포먼스 순으로 이어졌다. 사회자 최광기씨는 “박 선생님은 ‘왕언니’로 늘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난로 같고, 샘물 같고, 따뜻한 밥이 되어주었다”며 “언제나 현역으로 살고 싶어 했던 그를 기리는 자매들의 아름다운 추모식”이라며 개회를 알렸다.

이어 한명숙 전 총리와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형 한국YWCA연합회 부회장의 헌화와 추모사가 진행됐다.

한 전 총리는 “박영숙 선생님은 1988년 향년 58세에 평민당 국회의원이 된 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치밀하게 일을 하셨다”며 “박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1989년 12월 여성계의 염원이던 가족법을 정기국회에서 혁명적으로 개정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탱크처럼 일했던 박 선생님의 정치력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운동의 산맥과 같았던 가족법 개정이 가능했다”고 추모했다.

한 전 총리는 또 “박 선생님을 병문안할 때마다 대부분 나라걱정이었다. 특히 여성의 정치 참여, 기울여져가는 시민사회의 복원을 힘주어 강조하셨다”며 “가시기 며칠전만 해도 ‘정치란 참 중요한 것’이라며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기초부터 단체장까지 여성들을 많이 포진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박 선생님이 가신 다음 우리에게 주어진 첫 과제가 지자체 선거 참여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박 선생님이 열정을 갖고 일하던 당당한 모습, 닮고 싶다. 그리고 항상 손수 밥을 지어 우리에게 먹이시던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을 닮고 싶다. 선생님의 염원을 우리가 받아 꼭 이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형 부회장은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가신 선생님, 이제는 편히 쉬시라”며 “선생님께서 소망하셨던 정의와 평화, 생명살림의 하나님나라를 위해 남아있는 후배들이 힘을 모아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권미혁 대표는 “박영숙 선생님이 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 부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추모사를 하게 됐다”며 “박 선생님이 가장 잘하신 일은 많은 후배들을 기르고, 선생님의 유지를 잇게 한 것 아닐까 싶다. 근현대사를 꿰뚫어 가르침을 줄 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 18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영숙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 여성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사랑하는 언니에게’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조문객들은 평소 박 이사장이 좋아했던 노래 ‘사랑하는 언니에게’를 부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둔 길 나 홀로 두려울 때 다가와 길 밝혀준 언니들 있지/ 험한 길 나 홀로 힘겨울 때 다가와 손 내밀어 손 잡아준 언니들 있지’(하략)라는 노래 가사가 평소 ‘왕언니’로 통한 박 이사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안혜경씨는 울음을 삼키며 추모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어 ‘내가 추억하는 박영숙 언니’라는 주제로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유여원 살림의료생협 사무국장, 오랜 벗 이종옥씨가 고인과의 추억을 회고했다. 유여원 국장은 “살림이재단에서 살림의료생협 공간을 2년반 동안 흔쾌히 내줘서 생협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며 “살림이재단의 큰 딸이 지역에 자리잡아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다. 겨울이면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활동가들의 책상에 놓아준 일이 기억난다”며 감사를 표했다. 유 국장이 “다정하고 따뜻하신 분이었는데 청결함이 남달랐다”며‘자리가 깨끗해야 활동이 잘된다’고 ‘자리론’을 편 분이라고 회고하자 조문객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희영 처장은 눈물의 추도사를 했다. 강 처장은 “얼마전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금방 일어서실줄 알았다”며 “선생님 곁에 있으면서 열정적이면서 품위 있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뵈었던 날 손수 자료들을 복사하던 일이 기억난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자 ‘강 선생은 더 힘든 일, 더 중요한 일 해야지’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강 처장은 또 “선생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4대강이나 새만금 현장에 가장 먼저 오셨고, 가장 앞에 계시다 끝까지 함께 해주셨다. 몽당연필을 손수 깎아 볼펜에 끼어 쓰셨다. 우리 모두의 큰 언덕이었고, 감히 닮고 싶은 분이자 자랑이었다”며 “선생님 영전에 아직 인사를 못 올렸다. 차마 선생님을 보낼 수 없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멋진 분이었다. 평화롭게 지내세요”라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종옥씨의 회고도 조문객들을 울렸다. 이씨는 “서른여섯살부터 지금까지 함께 투쟁했고,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다. 따뜻하면서도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잘 견디고 참고 열정적으로 일했다”며 이희호 여사의 회갑연 때를 회고했다. 아무데서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아 북한산 밑 남의 농장에서 박 이사장과 함께 신문지를 깔고 음식을 준비해 이 여사의 회갑연을 차렸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들을 감옥에 보낸 후 감옥에 있던 무의탁 재소자들을 위해 내복 200벌을 넣어주기도 했다. 박영숙은 늘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이번에 병들어 아플 때도 ‘이제 일 그만 하고 여행 다니며 삽시다’ 했는데 내말을 듣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2013 여성신문의 약속 - 여성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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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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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565297
여성운동계의 원로인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박영숙 전 대행은 평양 출신으로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YWCA 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평생을 여성운동에 힘쓰며 큰 족적을 남긴 '여성운동계의 대모(代母)'다.

또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안철수 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 ‘100인 기부 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활동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으며, 현재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박영숙 대행의 타계소식이 알려지자 각계의 추모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동지적 관계'였던 박영숙 대행의 타계소식을 듣고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여성운동가이자 여성인권과 복지의 기틀을 잡은 고인은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여성계 지도자였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이 어려울 때 한결같이 품어준 고인의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유가족과 여성운동가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한명숙 전 대표는 트위터에 '여성운동의 대선배인 고인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했다'며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던 따뜻한 마음을 닮고 싶다'고 적었다.

(사진=SBS 뉴스 캡처) 


2013-05-22
조회 10
http://mbceconomy.com/detail.php?number=4574&thread=26r06여성운동의 대모 박영숙(사진. 전 안철수 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난 박 전 이사장은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YWCA연합회 총무를 시작으로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을 지냈다.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해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사랑의친구들 총재, 한국여성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이 외에 김대중정부 산하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재단 고문,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살림이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박 전 이사장은 2012년 초 설립된 안철수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암 투병 탓에 지난 3월7일 사임, 치료를 받아왔다.

여성운동 후배인 민주당 한명숙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운동의 대선배인 박영숙 선생께서 오늘 아침 운명하셨다.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들어가신 선생님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하셨다.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시던 그 마음은 따듯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닮고 싶다. 편히 잠드소서'란 글을 올렸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하던 중 박 전 권한대행의 타계소식을 듣고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희 기자 / leehee@mbceconomy.com


2013-05-22
조회 16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5/18/11153236.html?cloc=olink|article|default여성과 인권 위해 평생을 헌신
DJ 사형 선고 때 구명 앞장
안철수재단 초대 이사장도


한국 여성 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던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81세. 평양 출신의 고인은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여성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YWCA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전두환 정권에서 일어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당시엔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남편은 안병무(96년 작고) 전 한신대 명예교수다. 여성운동을 하던 67년에 만나 결혼했다. 안 전 교수는 박정희정부 시절 3선 개헌 반대 100만 명 서명 운동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하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대학 후배로 김 전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깊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구명 운동에 앞장섰고, 87년 김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자 부총재를 맡았다.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88년 13대 총선에선 여성 최초로 비례대표 1번을 받아 원내에 진출,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도 지냈다.

김대중정부 시절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런 인연으로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선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고인은 환경·기부 분야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등을 두루 맡았다. 99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100인 기부 릴레이’를 주도하면서 기부 문화 확산에도 기여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2011년)했으며,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섰다.

이런 이력 때문에 지난해 2월 개인적 인연이 없는 안철수 의원으로부터 기부재단인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의 이사장직을 제의받아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올해 3월 암투병을 하게 되면서 물러났다.

유족은 아들 안재권(번역가)씨, 며느리 박은정(인제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02-2227-7550.

김경진 기자


2013-05-22
조회 17
http://news1.kr/articles/1137538'투병 중에도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열정 다해'

1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박영숙 전 안철수 재단 이사장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렸던 박 전 이사장은 평양 출신으로 YWCA 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3.5.17/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서울=뉴스1) 고유선 기자= 여성인권운동가로 환경운동가로, 정치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삶을 살다 17일 영면에 들어간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후배들은 그를 '인간적이고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17일 박 전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고인의 후배들은 조문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를 추억했다.


가족들과 함께 상주 역할을 맡은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은 '박 선생님은 굉장히 인간적으로 따뜻했던 분으로 일 년에 한 두 번씩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다 밥을 지어주셨다'며 '후배들이 굉장히 존경한 선배였기 때문에 그 분이 부르시면 한 번에 30~40명이 몰려가곤 했다'고 전했다.


남 의원은 '함께 밥을 나누며 대화를 하다보면 선생님은 꼭 좋은 말씀들을 한 두가지씩 해주셨다'며 '지난 번에는 총·대선과 지방선거 얘기를 하시며 여성들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1987년 평민당에 입당해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비례대표 1번을 평민당에서 배정받기도 했으며, 13대 국회의원과 평민당 부총재·총재권한대행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2002년 국민의정부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남 의원은 '전날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함께 문병을 갔는 데 너무 고통스러워 하셔서 병실에 들어가진 못했다'며 '이번에 입원했다고 하셔서 어제 민주당 여성의원들끼리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는 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지 몰랐다'고 말했다.


80년대부터 박 전 이사장과 인연을 맺어온 김상희 의원은 '박 선생님은 이례적으로 여성 운동가이면서도 환경에 관심이 많아 나와 여성환경연대를 만들기도 했다'며 '여성운동이나 환경운동, 정치까지 선생님은 내 인생의 멘토였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안철수재단(現 동그라미재단)의 이사로 이사장직을 맡았던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윤정숙 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이사장님은 정말 열정을 가지고 사신 분'이라며 '얼마 전 댁으로 찾아뵌 적이 있었는 데 그때도 이사장님은 '나는 일을 할 때면 꼭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윤 전 이사는 '이사장님은 아프실 때도 자료를 보시면서 공부를 하셨다'면서 '모든 일에 정말 열정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향년 81세로 별세한 박 전 이사장은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평가받는다.


1932년 평양 출생인 고인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YWCA연합회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대책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아 여성 인권 세우기에 앞장섰다.


1999년에는 우리나라 시민사회 최초의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었다.


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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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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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72157295&code=100402초여름에 접어들던 이달 초순의 어느 날 저녁,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 815호실 병상에 내내 누워 있던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반가운 손님들에 모처럼 일어나 앉았다. 지난해 7월 척추암 진단을 받은 후 2차 항암 치료도 포기할 만큼 힘겨웠지만 이때만은 환하게 웃었다. 여성운동계 후배들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붓꽃을 한아름 사들고 찾아온 것이다. 박 전 이사장은 후배들에게 “민주개혁 진영이 지난 대선에서 졌지만 좌절하면 안된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고 오히려 다독였다. 내년 지방선거에 여성들이 대거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이사장은 지난 대선 결과가 몹시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자신이 안철수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터라 심적인 부담을 털어내지 못한 듯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안 의원은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단순명쾌한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생사를 오가는 절박한 순간에도 이처럼 여성과 정치를 가슴속에 품었던 박 전 이사장. 하지만 17일 새벽 5시, ‘영원한 현역 운동가’ 박 전 이사장은 가족의 눈물 속에 81년의 삶을 내려놓았다.



‘박
영숙’이라는 이름 석자는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평양 출신으로 전남여고를 나온 그는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시절
대학생 기독교 여자청년회(YWCA) 회원으로 활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YWCA 청년부 간사를 맡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YWCA 강사였다. 이후 10년 연상의 이 여사와 박 전 이사장은 지난한 세월 동안 동지이자 선후배로 길고 긴
인연을 맺어왔다. 1970년대 말 김대중 대통령이 가택 연금되자 이 여사는 서울 우이동 박 전 이사장 집을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
이용하곤 했다.




박 전 이사장의 인생행로는 1967년 민중신학자 고 안병무 한신대 교수와 결혼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길로 접어든다. 당시 안 교수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재야의 중심인물이었다. 그 역시 반독재 투쟁에 들어섰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때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박 전
이사장은 정치권에 들어섰다.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가 여성계 대표 인사를 당에 추천해 달라고 여성단체협의회에 요청하면서다.




여성계 인사 7명을 추천해달라는 김 총재의 요청에 그는 망설였다. 그때 남편인 안 교수가 “여성들은 멀었다”고 자극한 일화는 유명하다. 박 전 이사장은 고 이태영 박사의 강권에 가까운 격려에 힘을 얻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낙선했지만, 이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박 전 이사장은 평민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격변하는 정치권에서 평민당 부총재, 민주당 최고위원, 총재 권한대행을 맡아 당을 꾸렸다.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렸던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오른쪽)이 1988년 5월 평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 총재로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박 전 이사장은 여권 신장에 진력했다. 가족법과 남녀고용평등법, 탁아법, 윤락행위방지법 등을 만든 게 이즈음이다. 14대 총선 불출마에 이어 이듬해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떨어지면서 그는 길지 않은 정치 생활을 마감했다. “남성의 정치가 힘의 게임이라면 여성들에게 정치란 삶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여성 정치세력화를 강조한 그도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기 어려웠다.

1999년 여성운동의 외연 확장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여성재단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다시 사회단체로 돌아갔다.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했고,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였다.

그는 한때 사회활동을 접으려고 했다. 그러나 회의 참가차 갔던 일본의 한 서점에서 ‘난민의 어머니’로 불리는 국제기구 활동가 오가타 사다코의 자서전 <70세에 꽃을 피운 삶>이란 책을 읽고 마음을 추슬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일본국제협력기구 이사장으로 세계 각국을 누비는 오가타를 보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예순 넘은 나이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해 지구환경학을 공부한 것은 그래서였다.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았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를 다시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것은 ‘예비 정치인 안철수’였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안 의원이 대선 예비후보로 부상하는 데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건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각층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이희호 여사는 이날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하던 중 타계 소식을 듣고 “참으로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했다. 한명숙 전 대표는 트위터에 “고인은 언제나 당당하고 소박했다”며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을 손수 만들어주던 따뜻한 마음을 닮고 싶다”고 적었다. 안철수 의원은 “거목을 잃었다. 그 슬픔이 한이 없다”면서 “영면하소서”라고 명복을 빌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안재권씨(번역가)가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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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007189806&code=11131100여성운동계의 대모(代母)인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故) 박 전 대행은 1932년 평양 태생으로 19세 때 월남해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여성·시민운동계에 투신, 한국 기독교여성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평생 여성 권한을 향상시키는 데 힘썼다. 지난 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박 전 대행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됐다. 당시 성고문사건대책 여성단체연합회장을 맡은 박 전 대행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으로 87년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전국구 1번으로 13대 국회의원이 됐다. 평민당에서 부총재까지 맡았고 93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국회의원으로서 여성이 친권자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한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탁아법 제정 등에 기여했다.

90년대 환경운동에도 뛰어들어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쳐 김대중정부에서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고, 2011년에는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무소속 안 의원이 대학교수에서 대선 예비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진보적인 신학자 고(故) 안병무 선생과의 사이에 외아들을 뒀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방문하던 중 박 전 대행의 타계 소식을 듣고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 여사가 10살이 많지만 두 사람은 한국 사회 초기 여성운동을 함께한 동지적 관계였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대선에서 내세운 여성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을 한결같이 품어준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안 의원도 별세 소식에 “거목을 잃었다. 그 슬픔이 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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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51716305598248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시민운동의 대모' 고 박영숙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명예 이사장의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후배 여성운동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계경 새누리당 전 의원 등이 방문했다. 또 감사원장을 지냈던 한승원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도 발걸음 했다.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에 쓸쓸한 표정이 드리웠다.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조문을 마치고 모여 있었다. 안타까운 분위기에 말수가 적었다.



한 전 총리는 '죽는 그날까지 현역이기를 원했던 박 이사장은 후배들 앞에 항상 앞장서는 모범이었다'며 '선생님이 아직은 더 필요한 사회인데 우리 후배들이 그 몫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이계경 전 의원의 흐느낌이 들렸다. 이 전 의원은 '열흘 전 뵀을 때만 해도 말씀을 조곤조곤 잘하셔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지는 미처 생각 못했다'며 '박 이사장처럼 한 길로 나아간 지도자는 다시 나오지 않을 만큼 위대하셨다'고
전했다.



빈소를 지키던 남윤인순 민주당 국회의원은 '고인은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셨던 여성운동의 대선배였다'며
'또 '살림이' 재단을 설립해 새로운 사회단체가 일어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역할에도 애쓰셨다'고 설명했다.



유승희 민주당 국회의원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렇게 빨리 가실지는 몰랐다. 한 번 더 배우고, 따르고 싶던
분이었다'며 '다시 건강을 찾으셔 벌떡 일어나 여성들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한 번 일하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를 위해서 후배로서 역할하며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박영숙 이사장은 이날 새벽 4시57분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박 이사장은 최근 수개월간 투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적 신학자 고(故) 안병무 선생과의 사이에서 1남을 뒀다.



박 이사장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는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 1988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 후 2002년 대통령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미래포럼 이사장,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 등을 맡았다.



신촌 세브란스에 차려진 박 이사장의 빈소에서는 18일 오후 4시 여성추모식과 19일 오후 7시 시민사회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발인은 20일,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