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는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탈성장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주목하고 가시화함으로써 전환의 씨앗을 찾습니다. 젠더정의 없이 기후정의는 실현될 수 없기에, 기후 거버넌스 내 성평등 보장과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후기] 희망과 아픔이 짠하게 공존하던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1월 25일, 몇 달 여간 다양한 단위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준비해 온 2차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여성환경연대에서는 공동대표님,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사무국 활동가 전원이 탑승했습니다! 이 날 서울에서는 19대, 전국 50여 곳에서 (무려 제주도에서 군사기지 저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활동가분들까지!) 희망버스가 출발했는데, 오후에 밀양 시내로 집결한 탑승객은 무려 4천여명에 이르렀습니다.밀양으로 가는 5시간 버스 여정.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이 머리 속을 오고갑니다. 주말을 반납하고 밀양으로 향한다는 데서 덜어지는 반쪽짜리 죄책감, 현장은 어떨까 어르신들을 어떻게 뵈면 좋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밀양으로 달려가고 있구나 싶어 작은 설레임까지 안고 버스는 무튼 출발했습니다.지난 1월 23일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에 절망을 느끼시며 고인이 되어버리신 故유한숙 어르신의 49재가 있었습니다. 영남루 앞 분향소가 위치해 있는 밀양교를 추모의 다리로 만들기 위해 버스에서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추모의 종이꽃을 접었습니다.
밀양경찰서, 밀양한전본부, 엄용수 밀양시장에게 전달하기 위한 항의 엽서도 썼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밀양시청!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을 풀어 온 몸을 열심히 치장합니다. 손수건, 풍성, 피켓, 마스크, 캐스터네츠, 탬버린, 손피켓, 스티커, 깃발, 해바라기 까지 들썩들썩한 행진을 위한 준비 완료! 행진은 밀양시청에서 출발해 영남루 앞 분향소를 거쳐 밀양 한전본부를 거쳐 밀양역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진을 하면서 1차 때부터 꾸준히 희망버스에 올라 밀양의 문제를 알리시고 계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도 뵙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밀양교에서 준비해 온 추모의 종이꽃을 다리에 묶었습니다. 다리를 거의 건널 때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다리가 온통 새하얀 꽃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밀양교가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온기를 담아서. '우리는 생명을 담보로 한 전기는 필요없다!'
한전 앞은 이미 빈틈 없이 경찰차벽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봐라 우린 꿈쩍도 안할 것이다' 라는 차갑고 무서운 기세로. 그래도 지칠 순 없지! 분필을 들고 한 자 한 자 하고 싶은 말들을 적고,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밀양역. 문화제에서 밀양의 어르신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를 흥얼거리시며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신명도 나면서 눈물도 납니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요. 이렇게 공기 좋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요. 겨울바람이 더욱 매서운 산 속에서요. 길 바닥에서요. 때로는 경찰에게 개 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끼니를 거르고, 온몸에 피멍이 들고, 응급실로 실려가면서요.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요.
전국 각지에서 온 수많은 희망버스 탑승객을 밀양의 모든 마을이 감당하긴 힘들어, 17호차 탑승객은 운 좋게 감물리 생태학습관에서 자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밀양의 별 7개짜리 호텔! 누군가는 비닐하우스에서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마을회관에서, 어른들 집에서 이 밤을 보내겠지만 모두들 한 마음으로 잠 못 이루며 피곤한 몸을 뒤척뒤척 했겠지요.다음날 26일 새벽 5시. 아침도 거르고 골안마을의 공사 현장으로 올랐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이게 일상이라 하십니다. 아침도 거르고 올라가봤자 산초입에서 한 번, 중턱도 못와서 다시 한 번 경찰에게 저지당해 새벽부터 입에서 잘 터져나오지도 않는 욕을 겨우겨우 내 뱉고 실랑이를 하다가 기냥 터덜터덜 내려오시는게 일상이라 하십니다.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 공사현장을 한 번이라도 내 두 눈으로 봐야, 무덤을 파서라도 이 공사를 막아야 숨 한 번 내쉴 수 있게다 하십니다. 새벽에 이 고생 한 번 하고 내려와 동네 할매랑 고스톱 한 번 치면 또 시원하게 풀린다고 허허 웃으시는데 이제는 맘이 짠하다 못해 찡하고 또 쨍합니다.
경찰과 산에서 숨밖꼭질 술래잡기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쁘게 잘 닦인 산 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경찰과 한전 직원만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산이 둘러쌓인 마을의 흙을 파 먹고 한 평생 농사지은 어르신도 오를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멀리서 온 '외부세력'은 더더욱 오를 수 없습니다. 기사에서 본 글자 그대로 '개처럼 산 을 기어' 올라가야지 그나마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경찰을 따돌리며, 몸싸움과 입씨름을 버텨내며 자꾸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너무 분하고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나는데 경찰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다 함께 오르던 일과 뿔뿔히 흩어져 혼자 경찰들에 둘러쌓이게 되었는데, 이게 내가 사는 나라의 공권력인가 싶어, 동생 또래의 의경인 이 친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까싶어 참담하고 또 아득해졌습니다. 그렇게 107번 공사 현장에 올랐습니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막기 시작하는 경찰과 의경들 *107번 공사현장 부근에 간신히 오른 주민분의 말씀*107번 공사현장 부근에서 널리 퍼지는 밀양아리랑*107번 공사현장 부근까지 열심히 올라온 꼬마의 똑부러진 발언골안마을의 어르신들께 작지만 준비해온 간식거리들과 늦게 완성된 목도리를 전달했습니다. '또 올께요. 꼭 올께요.' 하는데 연신 고맙다고만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작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뒤늦게 와서 죄송해요. 이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함께 해 드리지 못해 어쩌지 못해 죄송해요.... 힘 내세요..'
고정, 도곡, 고답, 여수, 동화전, 보라, 동화전마을에서 이날 새벽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모두가 공사 현장에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영남루 분향소 밑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싸움을 계속 지지 할 것임을, 그리고 열심히 알릴 것임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임을, 그러니 희망을 잃지 않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헤어질 시간. 어르신들의 눈가도 탑승객들의 눈가도 아쉬움에 미안함에 고마움에 벅차오릅니다.
지난 밤, 감물리 숙소를 찾아주신 조성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 어떤 자세한 설명이 무에가 중요하겠습니다. 현장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은 한 뼘 자랄 것입니다.한 뼘 자란 마음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이 마음을 부여잡고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더 많아집니다. 지치지 않고 이 마음을 잘 간직해 다시 어르신들을 만나뵙게 되는 날 웃으며 손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송전탑따위는 엿바꿔 먹고 나서요.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어르신들의 신명나는 어깨춤과 단단한 의지와 마음을 보며 전날 문화제에서 모두를 들뜨게 했던 뮤지션 스카웨이커스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밀양경찰서, 밀양한전본부, 엄용수 밀양시장에게 전달하기 위한 항의 엽서도 썼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밀양시청!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을 풀어 온 몸을 열심히 치장합니다. 손수건, 풍성, 피켓, 마스크, 캐스터네츠, 탬버린, 손피켓, 스티커, 깃발, 해바라기 까지 들썩들썩한 행진을 위한 준비 완료! 행진은 밀양시청에서 출발해 영남루 앞 분향소를 거쳐 밀양 한전본부를 거쳐 밀양역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진을 하면서 1차 때부터 꾸준히 희망버스에 올라 밀양의 문제를 알리시고 계신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도 뵙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밀양교에서 준비해 온 추모의 종이꽃을 다리에 묶었습니다. 다리를 거의 건널 때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다리가 온통 새하얀 꽃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밀양교가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온기를 담아서. '우리는 생명을 담보로 한 전기는 필요없다!'
한전 앞은 이미 빈틈 없이 경찰차벽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봐라 우린 꿈쩍도 안할 것이다' 라는 차갑고 무서운 기세로. 그래도 지칠 순 없지! 분필을 들고 한 자 한 자 하고 싶은 말들을 적고,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밀양역. 문화제에서 밀양의 어르신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를 흥얼거리시며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신명도 나면서 눈물도 납니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요. 이렇게 공기 좋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요. 겨울바람이 더욱 매서운 산 속에서요. 길 바닥에서요. 때로는 경찰에게 개 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끼니를 거르고, 온몸에 피멍이 들고, 응급실로 실려가면서요.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요.
전국 각지에서 온 수많은 희망버스 탑승객을 밀양의 모든 마을이 감당하긴 힘들어, 17호차 탑승객은 운 좋게 감물리 생태학습관에서 자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밀양의 별 7개짜리 호텔! 누군가는 비닐하우스에서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마을회관에서, 어른들 집에서 이 밤을 보내겠지만 모두들 한 마음으로 잠 못 이루며 피곤한 몸을 뒤척뒤척 했겠지요.다음날 26일 새벽 5시. 아침도 거르고 골안마을의 공사 현장으로 올랐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이게 일상이라 하십니다. 아침도 거르고 올라가봤자 산초입에서 한 번, 중턱도 못와서 다시 한 번 경찰에게 저지당해 새벽부터 입에서 잘 터져나오지도 않는 욕을 겨우겨우 내 뱉고 실랑이를 하다가 기냥 터덜터덜 내려오시는게 일상이라 하십니다.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 공사현장을 한 번이라도 내 두 눈으로 봐야, 무덤을 파서라도 이 공사를 막아야 숨 한 번 내쉴 수 있게다 하십니다. 새벽에 이 고생 한 번 하고 내려와 동네 할매랑 고스톱 한 번 치면 또 시원하게 풀린다고 허허 웃으시는데 이제는 맘이 짠하다 못해 찡하고 또 쨍합니다.
경찰과 산에서 숨밖꼭질 술래잡기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쁘게 잘 닦인 산 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경찰과 한전 직원만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산이 둘러쌓인 마을의 흙을 파 먹고 한 평생 농사지은 어르신도 오를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멀리서 온 '외부세력'은 더더욱 오를 수 없습니다. 기사에서 본 글자 그대로 '개처럼 산 을 기어' 올라가야지 그나마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경찰을 따돌리며, 몸싸움과 입씨름을 버텨내며 자꾸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너무 분하고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나는데 경찰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다 함께 오르던 일과 뿔뿔히 흩어져 혼자 경찰들에 둘러쌓이게 되었는데, 이게 내가 사는 나라의 공권력인가 싶어, 동생 또래의 의경인 이 친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까싶어 참담하고 또 아득해졌습니다. 그렇게 107번 공사 현장에 올랐습니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막기 시작하는 경찰과 의경들 *107번 공사현장 부근에 간신히 오른 주민분의 말씀*107번 공사현장 부근에서 널리 퍼지는 밀양아리랑*107번 공사현장 부근까지 열심히 올라온 꼬마의 똑부러진 발언골안마을의 어르신들께 작지만 준비해온 간식거리들과 늦게 완성된 목도리를 전달했습니다. '또 올께요. 꼭 올께요.' 하는데 연신 고맙다고만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작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뒤늦게 와서 죄송해요. 이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함께 해 드리지 못해 어쩌지 못해 죄송해요.... 힘 내세요..'
고정, 도곡, 고답, 여수, 동화전, 보라, 동화전마을에서 이날 새벽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모두가 공사 현장에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영남루 분향소 밑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싸움을 계속 지지 할 것임을, 그리고 열심히 알릴 것임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임을, 그러니 희망을 잃지 않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헤어질 시간. 어르신들의 눈가도 탑승객들의 눈가도 아쉬움에 미안함에 고마움에 벅차오릅니다.
지난 밤, 감물리 숙소를 찾아주신 조성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 어떤 자세한 설명이 무에가 중요하겠습니다. 현장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은 한 뼘 자랄 것입니다.한 뼘 자란 마음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이 마음을 부여잡고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더 많아집니다. 지치지 않고 이 마음을 잘 간직해 다시 어르신들을 만나뵙게 되는 날 웃으며 손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송전탑따위는 엿바꿔 먹고 나서요.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어르신들의 신명나는 어깨춤과 단단한 의지와 마음을 보며 전날 문화제에서 모두를 들뜨게 했던 뮤지션 스카웨이커스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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