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끄러웠습니다. 새로운 활동가나 연대자분들을 만나뵙게 되는 자리마다 '여성환경연대 밀양대책위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복코입니다.'라고 소개받는 것이. 아직도 입에 잘 붙지 않은 걸 보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죄송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나봅니다.
지난주, 밀양 송전탑 공사부지 농성장 4곳을 철거하기 위한 행정대집행이 강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치고 밀양으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어르신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나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득 안고서.

6월 10일 오후 4시경, 밀양대책위의 공간 너른마당 도착.
밀양에는 한전보다 먼저 송전탑 공사부지를 점한
부북면 위양마을의 127번, 부북면 평밭마을의 129번, 단장면 용회마을의 101번, 상동면 고답마을의 115번 총 4곳에 농성장이 위치해있었습니다. 4곳의 농성장 모두 꽤나 가파른 산 꼭대기 위에 있는데, 어르신들은 그 곳에 움막을 짓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 오셨습니다. 이 농성장 모두를 철거하고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 행정대집행 계고장의 내용이었으며, 한전과 밀양시청의 의지였습니다. 행정대집행은 6월 11일 새벽 6시로 고지되어 있었고
(공교롭게 지방선거 직후, 월드컵을 앞둔 어수선한 시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대자들이 마음을 모아 밀양으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이미 농성장으로 가는 길과 입구는 경찰병력으로 꽉꽉 막혀있었습니다.
6월 10일 오후 6시경, 101번 농성장을 향해 산을 오르다.


경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소리와 발걸음을 조심하면서 산을 돌고 돌아 101번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산 꼭대기의 농성장에는 전기도, 물도 없었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온 몸을 다해 힘껏 보여주시는 어르신들과, 연대자들의 마음이 모여 있었습니다. 나무의자로 만든 근사한 카페도, 생태화장실도 있는, 없을 것 빼고 있을 것은 다 있는 101번 농성장!



송전탑 공사만 아니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새벽 6시, 대집행이 들어올 각오를 하고, 모두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르신들의 9년 싸움의 상징인 이 곳이 단 하루만에 강제로 철거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연행되고 다치고 어르신들의 마음은 깨질 수 있다는 사실, 그 밤 우리가 기다려야하는, 해가 뜨면 마주해야 하는 공권력의 모습이었습니다.

6월 11일 새벽 6시경, 129번 농성장 행정대집행 시작.
새벽 6시, 2,000여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되어 129번 농성장이 갈기갈기 찢기고 어르신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연이어 127번, 115번 농성장에도 행정대집행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101번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곳부터 들이닥칠지 몰라 주민분들과 연대자분들 모두 새벽 5시부터 뜬 눈으로 기다렸습니다.
어르신들은 움막 안에 온 몸을 쇠사슬로 묶고, 연대자들은 움막 주위를 둘러앉아 몸과 움막을 밧줄로 묶어 오래 버티기 위한 만발의 준비를 했습니다.


6월 11일 오후4시경, 행정대집행이 아닌, 경찰대집행과 아비규환.
5시부터 대기하고 있었으니 무려 11시간 끝에 경찰을 앞세운 한전과 밀양시 공무원은 101번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형식적인 계고장 낭독이 끝나고, 움막위에 올라가 계신 신부님과 어르신은 김수환 밀양경찰청장을 불러 대화로 해결하자고, 다치는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몇번이나 요청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움막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분노의 외침, 울음소리, 실신하고 발작하는 주민분들, 강제집행 과정에서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연대자들까지. 그야말로 농성장은 아비규환이었고 한전의 앞잡이가 된 경찰병력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신속함으로 농성장 철거를 끝냈습니다.
6월 11일 오후6시경, 벌목과 공사를 시작.
9년 싸움의 억울함, 분노, 패배감, 허망함, 외로움, 상실감 등 모든 감정이 뒤엉켜 울음이 통곡으로 바뀐 어르신들을 앞에 두고 너무나 잔인하게도 한전은 벌목을 시작했습니다. 그 벌목소리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의 발작은 더욱 심해지시고,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 제발 잠시만 공사를 멈춰주세요.' 아무리 소리를 쳐도 경찰과 한전에게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었습니다. 헬기가 뜨고 포크레인, 컨테이너 등 공사자제를 수 차례 나르면서, 그 옆에 고착되어 있던 주민분들과 연대자들은 헬기의 모래먼지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습니다. 비인간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최소한의 양심과 예의도 없는 그 행태에 그 동안의 걱정과 불안함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


6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도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는 긴급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또
오후 2시에는 을지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서울지역본부에서 제 2차 기자회견이 열려 많은 시민들에게 밀양의 상황을 알리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문을 꼭 닫고 입구에 경찰들을 배치해놓은 한전, 창피하기는 한 걸까요?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한전과 경찰의 행정대폭력에 대해 저녁에는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기자회견 이후 긴급 문화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하루만에 준비된 문화제였지만 발언과 공연을 합쳐 무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될 정도로 많은 분들의 마음과 힘이 모였습니다
. 백기완 선생님, 김조광수 감독님, 김제남 의원님, 유한숙 어르신의 유족인 유동환님 등 밀양의 친구들을 합쳐 약 백 여명의 분들이 함께 해주셨는데요. 성미산 마을의 하하님, 애기똥풀님 등 문화공연도 잇따라 열렸습니다. 비 오는 흐린날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신 긴급문화제, 함께 하지 못한 죄송함과 분노를 모아 다시 시작될 밀양의 싸움에 조금 더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6월 14일 토요일, 여성환경연대 식구들은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러 다시 밀양에 찾았습니다.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3곳이 나뉘어 동시에 진행된 촛불 문화제에서 어르신과 연대자 모두 마음의 기운을 되찾고, 이 아름다운 곳을 지키기 위한 약속과 다짐을 함께 했습니다.

부북면 평밭마을에서는
여성환경연대 정책국장님이신 이안소영쌤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다같이 '내나이가 어때서'를 합창하기도 하고,



상동면 고답마을에서는 지치고 힘드신 어르신들과 마주앉아 풀리지 않은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6월 16일 월요일에는 어르신들이 상경하셨습니다.
오전에는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오후에는 삼성동 한전본사 앞에서 부당한 경찰폭력과 명목 없는 공사를 이어가려는 한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에 대해 국민대집행 영장을 발부하기도 하고,
'한전이 공기업이면 똥파리가 봉황이다'고 외치며 어르신들의 마음을 달래줄 송전탑 부수기 퍼포먼스도 이어졌습니다.
밀양 산새들, 화악산 산신령, 도곡저수지 산신, 단장면 밤톨들, 산외면 사과나무들, 상동면 단감나무들, 부북면 벼들, 87세 김말해할머니, 80세 덕촌할매, 74세 고준길할배, 66세 한옥순할매, 밀양 깻잎하우스, 떡갈나무, 미나리 일동이 보내는 기자회견문입니다.


온 몸을 밧줄이나 쇠사슬로 움막과 묶고 두려운 마음으로 연대자들의 손을 꼬옥 잡고 있을 때,밀양의 별이 총총 떠오르기 시작하던 촛불문화제에서 어르신들의 손을 부여 잡고 있을 때,서울에 올라온 어르신들과 때양볕 속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헤어지기 아쉬움의 인사를 나눌 때,우리는 다 같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아직도 노래를 부르다보면 울음이 쉬이 멈추지 않아 후렴구까지 따라 부르지 못하고 있지만,언젠가 밀양을 지켜냈다는 미소와 함께 끝까지 다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나의 살던 고향은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차리인 동네그속에서 놀던때가그립습니다

6월 10일 오후 4시경, 밀양대책위의 공간 너른마당 도착.
밀양에는 한전보다 먼저 송전탑 공사부지를 점한 부북면 위양마을의 127번, 부북면 평밭마을의 129번, 단장면 용회마을의 101번, 상동면 고답마을의 115번 총 4곳에 농성장이 위치해있었습니다. 4곳의 농성장 모두 꽤나 가파른 산 꼭대기 위에 있는데, 어르신들은 그 곳에 움막을 짓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 오셨습니다. 이 농성장 모두를 철거하고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 행정대집행 계고장의 내용이었으며, 한전과 밀양시청의 의지였습니다. 행정대집행은 6월 11일 새벽 6시로 고지되어 있었고 (공교롭게 지방선거 직후, 월드컵을 앞둔 어수선한 시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대자들이 마음을 모아 밀양으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이미 농성장으로 가는 길과 입구는 경찰병력으로 꽉꽉 막혀있었습니다.6월 10일 오후 6시경, 101번 농성장을 향해 산을 오르다.
6월 11일 새벽 6시경, 129번 농성장 행정대집행 시작.
새벽 6시, 2,000여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되어 129번 농성장이 갈기갈기 찢기고 어르신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연이어 127번, 115번 농성장에도 행정대집행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101번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곳부터 들이닥칠지 몰라 주민분들과 연대자분들 모두 새벽 5시부터 뜬 눈으로 기다렸습니다. 어르신들은 움막 안에 온 몸을 쇠사슬로 묶고, 연대자들은 움막 주위를 둘러앉아 몸과 움막을 밧줄로 묶어 오래 버티기 위한 만발의 준비를 했습니다.6월 11일 오후4시경, 행정대집행이 아닌, 경찰대집행과 아비규환.
5시부터 대기하고 있었으니 무려 11시간 끝에 경찰을 앞세운 한전과 밀양시 공무원은 101번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형식적인 계고장 낭독이 끝나고, 움막위에 올라가 계신 신부님과 어르신은 김수환 밀양경찰청장을 불러 대화로 해결하자고, 다치는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몇번이나 요청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움막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분노의 외침, 울음소리, 실신하고 발작하는 주민분들, 강제집행 과정에서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연대자들까지. 그야말로 농성장은 아비규환이었고 한전의 앞잡이가 된 경찰병력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신속함으로 농성장 철거를 끝냈습니다.6월 11일 오후6시경, 벌목과 공사를 시작.
9년 싸움의 억울함, 분노, 패배감, 허망함, 외로움, 상실감 등 모든 감정이 뒤엉켜 울음이 통곡으로 바뀐 어르신들을 앞에 두고 너무나 잔인하게도 한전은 벌목을 시작했습니다. 그 벌목소리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의 발작은 더욱 심해지시고,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 제발 잠시만 공사를 멈춰주세요.' 아무리 소리를 쳐도 경찰과 한전에게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었습니다. 헬기가 뜨고 포크레인, 컨테이너 등 공사자제를 수 차례 나르면서, 그 옆에 고착되어 있던 주민분들과 연대자들은 헬기의 모래먼지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습니다. 비인간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최소한의 양심과 예의도 없는 그 행태에 그 동안의 걱정과 불안함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6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도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는 긴급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6월 14일 토요일, 여성환경연대 식구들은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러 다시 밀양에 찾았습니다.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3곳이 나뉘어 동시에 진행된 촛불 문화제에서 어르신과 연대자 모두 마음의 기운을 되찾고, 이 아름다운 곳을 지키기 위한 약속과 다짐을 함께 했습니다.6월 16일 월요일에는 어르신들이 상경하셨습니다.
오전에는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오후에는 삼성동 한전본사 앞에서 부당한 경찰폭력과 명목 없는 공사를 이어가려는 한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에 대해 국민대집행 영장을 발부하기도 하고, '한전이 공기업이면 똥파리가 봉황이다'고 외치며 어르신들의 마음을 달래줄 송전탑 부수기 퍼포먼스도 이어졌습니다. 밀양 산새들, 화악산 산신령, 도곡저수지 산신, 단장면 밤톨들, 산외면 사과나무들, 상동면 단감나무들, 부북면 벼들, 87세 김말해할머니, 80세 덕촌할매, 74세 고준길할배, 66세 한옥순할매, 밀양 깻잎하우스, 떡갈나무, 미나리 일동이 보내는 기자회견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