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시민건강강좌는 '21세기의 의료와 문화 <건강이 뭐길래?>'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소모임 '애지중지'에서 책모임을 하면서 읽은 <<몸의 역사>>의 저자 강신익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동안 시민건강강좌는 3월부터 의료방사선, 미세먼지, 독성가족 (유해화학물질)을 주제로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 환경재단 레이첼카슨 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유해물질 정보보다는 몸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지를 그리는 인문학 강의로 찾아뵈었답니다.
꼼꼼한 강의 정리는 여성환경연대 정책팀 복코가 맡아주었습니다. 강의내용을 공유드립니다. 못 오셔서 서운한 분이 계셨다면, 강의 내용과 자료가 아래에 나와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몸'담론에 대한 사회적 이념과 배경
한국사회에서 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운동권이었다. 러시아가 붕괴하면서 무너진 운동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몸에 대한 담론은 억눌러 있던 욕망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몸 담론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이 있다. 근대사회를 규정짓는 한 마디는 '이성, 계몽'이다. 올바르고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여겨졌다. 당시의 보편성이 좌/우로 분리되어 있었다. 모더니즘(근대사회)가 무너지면서 동태한 담론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한국은 좌우의 대립을 나중에 경험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모더니즘 이념의 찌꺼기를 가지고 살고 있다.
몸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의학적인 부분이다. 유신시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의과대학은 사회에 관심이 드물다. 유신시대의 운동권은 80년대(전두환정부)와는 비교과 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 모두 고도로 억압되던 시절이었고,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학문이 아닌 기술이었다. 억압적인 환경을 '내 몸이 못 견디겠다'라는 지적욕망, 사회에 대해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런 정서가 차곡차곡 몸에 쌓여있었다.
최근 발간한 책 <세월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제목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는 인류의, 전 생명의, 한국인의, 나의 역사가 쌓여 있다. 흰머리, 주름살, 검버선이 나의 인생을 이야기해주고 있고, 자세히 파고들어가보면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나의 몸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두 가지 결론 : '나는 몸이다'. '건강은 없다'
우리는 몸을 물질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몸/마음 으로 나뉘지 않는다. 몸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나는 내 몸이다. 내 몸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상당한 보편성을 가진 지식을 '과학'이라고 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다. 우리 몸도 변화하는 존재이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건강을 찾는다. 두번째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건강은 없다'이다. 우리 몸을 기계로 생각하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드러난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심장나이'라는 표현만 봐도, 나이대의 평균을 구해서 나의 심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몸은 내 것인데,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몸'과 관련한 지식의 재편
몸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지식도 중요하다. 부산의 인제대학의 의과대학이 한국에서 가장 앞서서 지식에서 출발하지 않고, 환자의 경험과 상식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시작했다. 정형화, 명쾌한,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한 지식에서부터 현장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경험 중심의 지식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저항은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런 변화가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이다. 남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시샘을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타인의 고통이 완화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몸이고, 나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몸이기도 하다. 공감능력은 선천적인 영향도 받는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나의 몸에 다른 몸을 지닌 경험을 하기에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강한 편이다. 금수도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본능에 충실한 것을 비도덕적이라고 보며, 금수만도 못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금수도 자연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행위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금수를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원시사회로 볼 수는 없다.
몸철학과 세번째 결론 : '몸과 환경은 둘이 아니다'
초창기 환경운동은 굉장히 순열적이었다. '환경은 무조건 보호해야한다'라는 주장이 강했다. 그러나 환경은 나와 떨어져 있는 대상이나 존재가 아니다. 환경을 인간이 보호해야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환경을 객체로 대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환경은 나와 떨어져 있지 않은 나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이 같은 관점이 '몸철학'이며 몸철학은 곧 '환경 철학'이기도 하다. 내가 관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
철학적으로도 환경과 인간은 구별되지 않는다. 자연은 무조건 보호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꾸어야 하는 것처럼 몸담론도 마찬가지이다. 세번째 결론은 '몸과 환경은 둘이 아니다' 저서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를 참고하라.
'건강'의 개념 : '미병'과 '장생'
건강의 완벽은 '나의 연식'을 기준으로 삼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디자인 된 그대로 된 상태가 기준이 되지만, 인간이 모두 동질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이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이다. '건강'을 개념화하자면, 건강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건강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 물론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질병'은 존재한다. 이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주체가 병원 의사 (기술자)가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살아가기 위한 나의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건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건강'이라는 개념은 19세기 말 태동했다. 지금 건강이라는 개념과 가장 유사한 것은 한의학에서는 '미병(未病아닐미, 병병)' 즉, 병이 아닌 상태이다. 여기에는 아직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병에 걸릴 것이라는 사고가 담겨있다. 병(病)과 사(死)는 하나로 묶여있다. 건강이라는 개념, 건강하자라는 표현은 매우 위선적이다. 자신의 나이에 따라 신체적인 상황, 사회적 위치도 반영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표현은 '장생(長生)'이 있다. 문헌에 장생의 용례를 보면, 가정과 경제가 안정되고 몸이 아프지 않은 상태를 장생이라고 본다. 이 중 하나만 만족되지 않아도 장생이라고 보지 않는다.
WHO에서는 건강을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안정 상태'라고 정의했다. 이는 너무 포괄적이긴 하나 사회적, 심리적 안정을 담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나의 몸을 구성하는데 상당히 중요하다. 현재 평균 수명은 80대 중반이다. 이 평균기대수명이 건강한 사회의 지표로 많이 사용된다. 가장 평균기대수명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절대적인 부가 아닌 상대적인 부, 즉 '소득격차'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소득격차가 높아 질 수록 경쟁심리와 상대적 박탈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질의응답시간에는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이냐로 시작되었습니다. 강신익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대안은 바로 의료협동조합 운동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성건강 소모임 <애지중지>에서는 의료협동조합마저도 건강을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닌가, 자조모임과 비전문가를 통해 건강을 풀어갈 수는 없는지 질문이 터져 나왔습니다.
강신익 선생님께서는 대안마저도 전문가의 손에 어느 정도 맡길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건강은 새로운 몸의 규범을 만들어내는 상태이라는 정의가 있듯, 의사의 규범을 그대로 몸에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몸의 규범을 만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의료 공공성 확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건강과 의사면허를 개인화는 방식으로 개인도, 사회도 건강해질 수는 없다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자본의 힘에 대항하여 저항하여 의료 민영화 반대하고 의료 공공성을 확보하는 정책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여성환경연대의 시민건강강좌는 여름에는 쉬고, 9월부터 한달에 한 번 금요일에 다양한 주제로 찾아갑니다.
해피빈을 통한 콩 기부도 받고 있습니다. 🙂
'몸'담론에 대한 사회적 이념과 배경
한국사회에서 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운동권이었다. 러시아가 붕괴하면서 무너진 운동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몸에 대한 담론은 억눌러 있던 욕망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두 가지 결론 : '나는 몸이다'. '건강은 없다'
우리는 몸을 물질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몸/마음 으로 나뉘지 않는다. 몸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나는 내 몸이다. 내 몸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몸'과 관련한 지식의 재편
몸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지식도 중요하다. 부산의 인제대학의 의과대학이 한국에서 가장 앞서서 지식에서 출발하지 않고, 환자의 경험과 상식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시작했다. 정형화, 명쾌한,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한 지식에서부터 현장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경험 중심의 지식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저항은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런 변화가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몸철학과 세번째 결론 : '몸과 환경은 둘이 아니다'
초창기 환경운동은 굉장히 순열적이었다. '환경은 무조건 보호해야한다'라는 주장이 강했다. 그러나 환경은 나와 떨어져 있는 대상이나 존재가 아니다. 환경을 인간이 보호해야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환경을 객체로 대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환경은 나와 떨어져 있지 않은 나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이 같은 관점이 '몸철학'이며 몸철학은 곧 '환경 철학'이기도 하다. 내가 관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건강'의 개념 : '미병'과 '장생'
건강의 완벽은 '나의 연식'을 기준으로 삼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디자인 된 그대로 된 상태가 기준이 되지만, 인간이 모두 동질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이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이다. '건강'을 개념화하자면, 건강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건강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 물론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질병'은 존재한다. 이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주체가 병원 의사 (기술자)가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살아가기 위한 나의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건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