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장애여성운동 교차적 관점에서 차별을 말하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여성인권 감수성 강의 2강

관리자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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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키오스크는 요즘 공공기관 안내용, 패스트푸드점 주문용 등으로 사용이 크게 늘고 있는데, 아무런 단추가 없이 터치스크린만으로 작동되는 이 키오스크를 그 시각장애인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이런 어려움에 대해 인식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권감수성의 시작은 차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입니다!

2월 18일 여성환경연대 주최 여성 인권 감수성 높이기 교육 제2강 <장애여성운동-교차적 관점에서 차별을 말하다>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사인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이동권 투쟁, 재난 상황의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짚으면서 장애와 젠더가 교차하며 발생되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것이 타자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인권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투쟁을 해야 하고 이를통해 확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장애인 부부가 추락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고작 13.74%에 불과했습니다(비마이너, www.beminor.com). 휠체어 리프트는 잦은 고장으로 추락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날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되었고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등을 촉구했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동 약자 전반의 문제로 인식해서 강력한 투쟁을 했지만, 투쟁은 지난했고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차마 옮길 수 없는 험한 말을 소나기처럼 맞아야 했습니다. 조미경 강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동권 투쟁을 이야기하다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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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들의 싸움' 영상. 2021년 1월 22일 오이도역 사고 20주년 추모식 시위 영상

이렇게 투쟁을 시작한 지 20년, 서울시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대부분 설치되어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 노인 등 많은 시민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외 지역 문제, 광역버스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합니다. 시민의 인식 수준은 어떨까요. 지난 1월 22일, 오이도역 사고 20주년 추모식 후 열차 한 칸 점거 시위를 진행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들은 일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장애인들을 향한 막말과 논리는 20년 전의 그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장연은 이 영상에 ‘병신들의 싸움’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의 문제는 더 복합적입니다. ‘장애’의 문제나 ‘여성’의 문제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고 복합적으로 발생되는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 운동에서 중요한 의제입니다. 동시에 그런 이유로 장애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문제는 뒷전으로 물린 것도 사실이에요.”

초기에는 장애 남성 중심의 경험에 기반한 운동이 주를 이루었고, 이중적으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운동 내 권력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수십 가지로 분류되는 다양한 장애 형태가 있음에도 장애인권 문제가 지체장애와 같은 특정 장애로만 부각되는 것 역시 또 다른 배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차별에 대항하는 연대의 필요성

2020년은 코로나19로 전세계적 재난의 시기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미경 강사는 재난 상황에 장애인들은 거의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상 속 배제’의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2019년 강원 지역 화재 때 공중파3사 어느 곳에서도 수어가 제공되지 않았고 자막 뉴스 안내도 없어 장애인들은 대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일 접하는 코로나 관련 브리핑에서 수어 통역을 볼 수 있는 건 불과 2년 전 이 사건에 대한 항의와 운동의 결과입니다.  김예지 의원의 안내견 국회 출입 논란, 터치스크린 키오스크나 도어락, 인덕션의 접근성 문제, 지역의 장애 시설 거부 문제, 탈시설 운동에 대한 낮은 인식 등은 바로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장애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어떡해…”하고 걱정하면서도 당연시합니다. 성별에 기반한 배제와 차별에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조미경 강사는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지체장애와 호흡기장애, 그리고 중도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이 청각장애가 생긴 후 그는 또 다른 차원의 일상 속 배제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수어를 익히지 못해 대화에 문제가 생기면서 섬에 홀로 존재하는 듯한 소외감을 느꼈고, 코로나19 상황 이후로는 마스크 때문에 입을 읽을 수 없어 더욱 대화가 어려워졌습니다. 각 장애마다 겪는 상황이 다르고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교차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계단에 미소를 짓는다고 경사로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고 그 가운데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각자의 차별에 대한 서사는 각자의 수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차별 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장애여성공감은 그런 이유로 다양한 소수자 차별 문제에도 연대하고있어요.”

하지만 10년 넘게 입법의 문턱을 못 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면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있지 않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교차적 시각을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호주의 인권운동가이자 방송인인 스텔라 영은 강연 영상에서 장애인을 ‘감동 포르노’로 소비하는 사회적 시각을 배격하면서 “계단에 미소를 짓는다고 경사로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동정의 시선, 동시에 일상에서 배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함께 서서 싸우고 지지하는 ‘연대’에서 계단을 경사로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인식’이 시작이라면 ‘연대’는 긴 여정에 발을 딛는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