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순무 (인턴 활동가)
여성환경연대 인턴 활동가 OT 프로그램으로 에코페미니즘 책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 세미나의 세번째 책으로 <코로나시대의 페미니즘>을 읽고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어느새 코로나19가 창궐한지 3년이 되었다.
답답하고 어색했던 마스크가 당연해지고, 오프라인 만남을 온라인으로 대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확진자 3천 명이라는 뉴스에 깜짝 놀란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60만 명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끝날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국이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답답한 마음만큼이나 절실하게 느낀 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다.
마스크 없이 사람들과 인사하고, 놀러 가고, 외부 활동에 큰 제약이 없던 일상.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진짜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오늘도 마스크를 쓰며 ‘올 가을에는 좀 괜찮아지겠지’한다.
그런 마음으로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을 읽었다.
이 책은 작년에 한 번 읽었는데, 이번 책 세미나로 또 읽을 기회가 생겨 2회독을 하게 됐다.
___
처음 읽었을 때는 코로나 초반의 상황과 그에 따른 노동,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두 번째 파트 [페미니즘이 기획하는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을 재밌게 읽었다.
주요 내용은 누구나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 같은 재난의 영향력은 젠더·계급·인종적 불평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서비스 노동자는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는 만큼 감염의 위험이 커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조치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이중적인 리스크에 노출된다.
“코로나19는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라는 말을 낭만적으로 쓰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 사람들, 돌보는 사람들, 가장 반복적으로 잊혀온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돌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돌봄과 무관한 인간은 없다. 무관한 척 살도록 허용하는 부정 의한 구조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돌봄은 여성의 것이고 남성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인식은 남성이 돌봄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봐주고,
여성들이 그 틈을 메꾸게끔 요구한 사회구조에서 나왔다.
코로나19로 사라지거나 잃은 것도 많지만, 반대로 드러난 것도 있다. 그게 바로 돌봄이다.
돌봄 노동이 잠깐 멈추자마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비명들이 돌봄은 삶과 생명을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환기시켰다.
서로의 약함을 돌보고 책임지는 것에서 나오는 힘이 코로나19 이후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__
이번에 읽을 때는 N번방,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이야기하는
세 번째 파트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넘어]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사상이자 관점인지 조금씩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 여러 글쓴이 덕분에
페미니즘의 의미를 재확립하고, 흥미로운 부분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의 주류 페미니즘이 어떤 모순과 한계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연대하고 활동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 봤다.
첫째, 페미니즘은 여성을 피해자로만 여기는 관념과 싸운다.
잠재적 가해자, 피해자라는 말이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데 이런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또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 위치에 세우면 ‘자격 있는 피해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둘째,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의 것이 아니다.
우선 생물학은 자연·물질세계 그 자체인 것 같지만, 이미 특정 필요와 관점에 따라 해석된 사회적 규정이다.
쉽게 말하자면 “섹스는 이미 젠더”다.
우리는 여성으로 식별되었기 때문에 경험하는 불평등에 저항할 때는 ‘여성이라는 위치’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그 위치를 부여하는 구조와 싸울 때는 ‘여성 정체성’의 허구를 심문해야 한다.
셋째,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한다.
모든 집단에는 여성이, 그니까 여성과 같은 위치에서 혐오와 차별을 당하는 이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배제된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에 그 어느 사상보다도 폭넓다.
그 장점을 살려 약자와 공존하는 법, 자연과 공생하는 법까지 모색한다.
여성 해방은 단순히 ‘여성 우선 페미니즘’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성차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__
코로나 이후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페미니즘적 관점은 필수적이다.
코로나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새로운 체제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서로의 약함을 돌볼 줄 알아야 하고, 개인의 성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바이러스, 새로운 재난이 찾아올 것이다.
다음 팬데믹은 지금보다 덜 불평등하길, 연대와 돌봄을 통해 극복할 수 있길 바라본다.
+ 함께 보면 좋을 영상
[코로나 재난, 공장은 멈춰도 돌봄은 멈출 수 없다_이을(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_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 외, 움직씨, 2020.03.06
작성자: 순무 (인턴 활동가)
여성환경연대 인턴 활동가 OT 프로그램으로 에코페미니즘 책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 세미나의 세번째 책으로 <코로나시대의 페미니즘>을 읽고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어느새 코로나19가 창궐한지 3년이 되었다.
답답하고 어색했던 마스크가 당연해지고, 오프라인 만남을 온라인으로 대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확진자 3천 명이라는 뉴스에 깜짝 놀란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60만 명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끝날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국이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답답한 마음만큼이나 절실하게 느낀 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다.
마스크 없이 사람들과 인사하고, 놀러 가고, 외부 활동에 큰 제약이 없던 일상.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진짜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오늘도 마스크를 쓰며 ‘올 가을에는 좀 괜찮아지겠지’한다.
그런 마음으로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을 읽었다.
이 책은 작년에 한 번 읽었는데, 이번 책 세미나로 또 읽을 기회가 생겨 2회독을 하게 됐다.
___
처음 읽었을 때는 코로나 초반의 상황과 그에 따른 노동,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두 번째 파트 [페미니즘이 기획하는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을 재밌게 읽었다.
주요 내용은 누구나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 같은 재난의 영향력은 젠더·계급·인종적 불평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서비스 노동자는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는 만큼 감염의 위험이 커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조치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이중적인 리스크에 노출된다.
“코로나19는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라는 말을 낭만적으로 쓰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 사람들, 돌보는 사람들, 가장 반복적으로 잊혀온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돌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돌봄과 무관한 인간은 없다. 무관한 척 살도록 허용하는 부정 의한 구조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돌봄은 여성의 것이고 남성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인식은 남성이 돌봄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봐주고,
여성들이 그 틈을 메꾸게끔 요구한 사회구조에서 나왔다.
코로나19로 사라지거나 잃은 것도 많지만, 반대로 드러난 것도 있다. 그게 바로 돌봄이다.
돌봄 노동이 잠깐 멈추자마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비명들이 돌봄은 삶과 생명을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환기시켰다.
서로의 약함을 돌보고 책임지는 것에서 나오는 힘이 코로나19 이후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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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을 때는 N번방,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이야기하는
세 번째 파트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넘어]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사상이자 관점인지 조금씩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 여러 글쓴이 덕분에
페미니즘의 의미를 재확립하고, 흥미로운 부분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의 주류 페미니즘이 어떤 모순과 한계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연대하고 활동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 봤다.
첫째, 페미니즘은 여성을 피해자로만 여기는 관념과 싸운다.
잠재적 가해자, 피해자라는 말이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데 이런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또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 위치에 세우면 ‘자격 있는 피해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둘째,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의 것이 아니다.
우선 생물학은 자연·물질세계 그 자체인 것 같지만, 이미 특정 필요와 관점에 따라 해석된 사회적 규정이다.
쉽게 말하자면 “섹스는 이미 젠더”다.
우리는 여성으로 식별되었기 때문에 경험하는 불평등에 저항할 때는 ‘여성이라는 위치’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그 위치를 부여하는 구조와 싸울 때는 ‘여성 정체성’의 허구를 심문해야 한다.
셋째,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한다.
모든 집단에는 여성이, 그니까 여성과 같은 위치에서 혐오와 차별을 당하는 이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배제된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에 그 어느 사상보다도 폭넓다.
그 장점을 살려 약자와 공존하는 법, 자연과 공생하는 법까지 모색한다.
여성 해방은 단순히 ‘여성 우선 페미니즘’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성차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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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페미니즘적 관점은 필수적이다.
코로나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새로운 체제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서로의 약함을 돌볼 줄 알아야 하고, 개인의 성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바이러스, 새로운 재난이 찾아올 것이다.
다음 팬데믹은 지금보다 덜 불평등하길, 연대와 돌봄을 통해 극복할 수 있길 바라본다.
+ 함께 보면 좋을 영상
[코로나 재난, 공장은 멈춰도 돌봄은 멈출 수 없다_이을(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_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 외, 움직씨, 2020.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