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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생태[후기] 밀양의 이틀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애처롭다

2014-05-01
조회수 3652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밀양에 다녀왔습니다.4월 중순, 밀양시가 송전탑 부지에 있는 4개의 농성장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계고 했고, 이에 대해 송전탑을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 해오시던 주민분들은 행정대집행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심리가 종결되었음에도 법원의 결정이 자꾸만 늦춰지고 있어 초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주민분들이 계신 공사부지의 농성장을 찾았습니다.기차를 타고 찾아간 127번 송전탑 공사부지의 농성 움막은 정갈했습니다. 쉼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식사를 준비하셨던 어머님의 바지런함 때문이겠지요. 움막의 밤이 어렵고 낯설어 저는 쉴새없이 쫑알쫑알 거렸습니다. 이부자리를 깔고 옆에 나란히 누워계셨던 덕촌할매는 연지곤지 찍고 가마타고 시집 온 그 날부터 오늘까지의 세월을 낮고 작은 목소리로 건네셨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억센 경남 사투리를 못 알아 듣기는 했지만. 비바람이 불던 그 밤이, 이렇게 무수한 밤 잠을 청하셨을 현실이 너무 매서워 쉬이 잠들지 못하고 꼬박 한 밤을 뒤척거리기만 했습니다. 할매는 저의 손을 꼭 붙잡고 설피 잠이 드셨고, 뒤척이시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비가 와 다행이라며, 오랜만에 빗물을 받아 세수도 하고, 설거지도 여유롭게 하시는 어르신들.이렇게 멀리서 와줘서 몇번이나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귀한 밥상을 쉬이 내어주시는 어르신들.저 멀리 126번 송전탑 조립이 완성된 모습. 저걸 지켜내지 못했다며 하염없이 안타까워 하시던 어르신들.'밀양을 산다'의 책에 담긴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청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막내 활동가는 어르신들을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기언코 싸인을 받았습니다. 펜을 잡고도 '나는 싸인이 없어'하며 수줍어 하시던 어르신도 결국 귀염둥이 애교에 못이겨 꾹꾹 눌러 이름을 적으시고, 요로코롬 인증샷도 흔쾌히 찍어주셨습니다.한전이 언제 농성장을 무력으로 철거할 지 몰라, 밤새 불침번을 세우며 지켜야 하는 길목의 초소비바람이 소리가 무섭게 내리치고, 어둠 속 작은 소리에 더 귀기울이게 되는 밤이 지나갑니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 동안 연대자들이 특히나 없는 동안 이 밤을 지키며 할매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그 세월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이제는 봄나물을 뜯고, 가끔 막걸리와 함께 민화투나 치시면서, 동네 이웃과 지나간 세월을 곱씹으며 일상을 보내야 할 할매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한전과 경찰을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불안해하시며 산을 지키고 계십니다. 기껏 찾아가 놓고도 무얼 해야할지 몰라 동동거리던 우리에게 할매는 껄껄 웃으시며 화통하게 농도 던지십니다. 공기도 맑고, 녹음도 짙푸르던 화악산 한 자락에서 마주한 할매들의 미소는 그 무엇보다 더 반짝였습니다.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너무나 애처롭습니다.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쉬지 않고 오전 내 내리고 있다. 주민 분들은 연대자들이 혹여 불편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들은 없는지 내내 신경 써 주시고 챙겨주신다. 이 산중에 이렇게 좋은 숙소가 있다니 역시 송구스럽기 그지 않다.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협력이 필요했을지 농성장 지키는 것도 힘드실 텐데... 이부자리도 너무 깨끗하고 정리정돈도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우리 어르신들의 야무진 살림살이 손길, 고수의 손길들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10여년 넘게 농성장들을 오가며 지내봤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따뜻하며 살림이 갖추어져 있는 곳은 못 본 듯하다. 이곳은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라 이 분들의 삶터이자 삶의 현장이라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공간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 당신들의 집에서 편히 쉬시고, 논밭에서 농사짓고 손자손녀들과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셔야 할 이 분들을 이 산속에서 이 길 위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는 이 정부를 규탄한다.  

-4월 28일 129번을 지키며 농성일지에 남기고 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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