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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에코페미니즘 책 리뷰] 보이지 않는 느린 죽음, 슬로우 데스

2022-04-29
조회수 86


작성자: 순무 (인턴 활동가)


여성환경연대 인턴 활동가 OT 프로그램으로 에코페미니즘 책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 세미나의 마지막 책으로 <슬로우 데스>를 읽고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슬로우 데스, 검은 배경에 노란 고무 오리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표지다. 
느린 죽음이라는 제목 탓인지 고무 오리는 조금 섬뜩하게 느껴진다. 거기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이 요소가 모두 더해지면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 어려워진다. 
다시 말하자면 손이 쉽게 가는 책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럼에도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두 명의 캐나다 과학자(릭 스미스와 브루스 루리에)가 직접 화학물질에 노출된 실험을 기록한 책이다. 
화학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내는 실험은 아니다. 
이미 유해하다고 밝혀진 화학물질들에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노출되는 건지 알아내고자 진행된 실험이다.

  많은 사람의 몸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화학물질이 내 몸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떤 행동과 습관을 바꿔야 오염 수치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용감한 저자가 ‘독성 화학물질에 일부러 노출된다’는 무모한 실험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아파트의 방 한 칸에서 지극히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게 실험 방법이었다. 
물론 실험 대상이 되는 화학물질에 맞춘 생활 패턴을 만들었지만,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될 법칙은 ‘일상 속에서 흔히 하는 행동’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지 않을 행동이라고는 간간히 혈액과 소변 샘플을 수집하는 것뿐이었다. 
릭과 브루스는 이런 방법으로 프탈레이트, 과불화화합물, 방염제, 수은, 항균물질, 제초제와 고엽제, 비스페놀A 등에 노출되고 
수치의 변화를 기록했다. 이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다루니 책이 두꺼워질 수밖에.

  9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는 이 두꺼운 책의 모든 내용을 천천히 읽어봐도 좋다. 
하지만 혹 시간이 없다면 마지막 9파트만 읽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9파트는 앞에서 다룬 화학물질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그 실질적인 실천법이 나와 있다.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면 마지막 파트는 꼭 읽어보길 바란다.



  책에서 가장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알려주는 실천법이 ‘개인의 노력’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비자로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선택으로 몸속 독성물질의 수치는 크고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릭과 브루스가 실험을 통해 단기간에 독성물질 농도를 치솟게 만들었듯이 반대로 농도를 재빨리 낮추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강박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독성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오염의 원천이 없더라도 밖에 나가면 바로 노출된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노력과 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9파트에서 소개되는 실천 방법에는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더불어 ‘시민이 할 수 있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역의 정치인이나 선거로 뽑은 정치인에게 요구하고, 관련 법안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방법이 있다.


  오늘날의 환경오염은 전 지구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고 그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나타난다.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는 오염보다 보이지 않는 오염이 더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데 8만 2천 개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그리고 매년 700개가 새롭게 추가된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도 책이 출간된 2009년 기준이다. 그중 단 650개만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에서 모니터링받고 있으며 
200개만 독성 테스트가 진행됐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단 5개의 화학물질만 사용이 금지됐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더 추가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고 험난한 과정 끝에 규제를 성공시켰다 해도 기업들은 금방 이름만 다른 똑같은 물질을 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화학물질이 사용된 후에 그 피해를 소비자가 입증하는 게 아니라 
사용 전에 생산자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책을 읽은 후 내 생활방식의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간편하고 가성비 좋은 물건들은 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건 비싸다. 
역시 사방팔방 깔린 독성물질의 위협을 완벽하게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위협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금방 까먹기 쉽다. 
하지만 의식하고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 한다. 
냉장고에 넣었던 플라스틱 밥통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는데 이제는 도자기 밥그릇에 옮겨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향이 나는 제품을 사거나 쓰지 않고 선물하지도 않는다. 
내가 무엇을 만지는지, 무엇을 입에 넣는지, 무엇을 들이마시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사소한 선택들이 몇십 년 뒤 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니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편하고 싸고 향기롭고 화려한 것들. 
이것들은 당장에 유혹적이고 무해해 보이지만 나의 몸을 천천히 부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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